개성과 일체감의 간극, 미관심의

베라하우스 0 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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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제주 출장 때 미팅차 제주영어교육도시 내에 위치한 단독주택택지를 찾았다. 분양은 모두 완료되었고, 매매에는 프리미엄까지 얹혀져 있는 상황이었지만, 들어선 집은 서너채에 불과했다. 분양된지 얼마 안된 탓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택지가 비어있는 이유가 될 법한 이야기 하나가 있었다. 해당 택지내에 가장 먼저 집을 지었다는 입주민의 입을 통해 들은 이야기인데 무엇을 위한 규제인지에 대해 한번쯤은 생각해봐야할 문제인듯 했다.

 

"지붕은 무조건 박공지붕이어야합니다. 집의 높이는 최고점 기준 8미터 이내여야하고, 지붕재로 아스팔트슁글이나 기와는 안됩니다. 바람에 날라갈 수 있기 때문이라나요? 소재 뿐 아니라 색도 거의 지정되어 있다시피하구요..."

 

아이들 교육에 대한 생각으로 제주 영어교육도시내 단독주택택지를 어렵게 분양받고 설레는 마음도 없잖아 있었지만 집을 짓기 위해 이것저것 준비하는 과정에서는 설레임 대신 자연스레 한숨이 나온다는 이야기도 한다. 아무리 특화된 곳이고, 특정한 목적을 위해 주거하는 곳이라고 해도 적어도 단독주택이라면 어느 정도의 개성과 나만의 집으로서의 요소들을 기대하기 마련인데 그런 것은 차치하고라도 규제조건에 부합하는 자재를 선택하다보면 처음 생각했던 예산으로는 건축이 어려워 집짓기를 보류하고 있는 경우도 있다는 정도니 말이다. 천혜의 자연을 기반으로 한 관광산업에 특화된 곳이라 미관/경관심의를 하는 것이 어느 정도 이해는 가지만 그러한 규정의 적용이 사람 사는 곳에 좋은 환경이 있는 것인지, 그 곳에 머무는 사람과 그의 삶 조차도 아름다운 경관의 한 부속 정도로 치부되는 것인지에 대한 혼돈마저 초래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처구니없고, 슬픈일이라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건축인들 사이에서 제주에서의 건축은 흔히 미관심의가 있는 곳인지 아닌지로 구분되기도 한다. 일본의 한 유명 건축가가 제주에서의 프로젝트를 진행하던 중 미관심의에서 번번히 퇴짜를 맞자 프로젝트를 포기하고 일본으로 돌아갔다는 일화는 제주의 미관심의가 건축가의 창의성과 얼마나 부딪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라 할 수 있다. 또한, "조화", "예술성에 기반한 예외사항", "중고명도, 중저채도" 등 미관심의기준에 명시된 내용들이 객관적이고 명확한 근거에 의한 판단이 어렵다는 것도 참으로 난감한 요소라 할 것이다. 집이 주변 환경과의 조화를 이루고 있는지에 대한 판단이나 예술성이 높다면 경사지붕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데 그 예술성에 대한 판단 역시 판단자의 기준에 입각한 자의적인 해석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커다란 도시를 계획하거나, 마을을 조성하는 일에 있어 인간의 손에 의해 만들어지는 도로나 건축물,조형물 등이 원형의 자연에 녹아들듯 어우러지는 것은 환경친화적으로 매우 중요한 일이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도시나 마을도 그 중심에는 사람이 있는 것이니 만큼 그것의 구현에는 충분한 개성과 정서적인 만족을 추구할 수 있어야할 것이라 생각된다. 많은 사람들이 아파트 등 공동주택에서 살며 정원 딸린 단독주택을 꿈꾸는 이유에 대해 조금이라도 귀기울인다면, 이같은 경관/미관을 위한 규제기준도 조금은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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